본문 바로가기
리뷰

영화 한산: 용의 출현 리뷰 줄거리 한산대첩

by 오마이엔젤 2023. 8. 24.
반응형

영화-한산-용의출현-포스터

 

영화 한산: 용의 출현 리뷰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인 명량의 뒤를 이어 한산 용의 출연입니다. 전작의 1,761만 명 관객 동원은 국민 3명 중 1명이 관람했다는 것인데 그 엄청난 부담감을 안고 개봉한 속편인 한산입니다.


일찌감치 3부작이 정해진 상황에서 후속작이 나오는데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던 건 그만큼 이 영화를 만드는 데에 부담이 심했다는 뜻일 겁니다. 전편의 명량이 해전을 그리는 방식, 당시 민초들을 반영한다며 심파를 난발한 것, 우리 후손들이 우리가 고생한 걸 알까 같은 괴상한 대사의 극의 진행 방식에 이르기까지 명량을 결코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고뇌를 드러낸 배우 최민식의 카리스마는 엄청났고, 임진왜란사에서 가장 처절한 전투를, 그야말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전을 치러내는 이순신의 분전을 그려냈기에 이 영화는 비할 바 없는 흥행을 하게 되었다는 것에는 여러분도 동의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한산 용의 출연해서 비슷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단 배우들이 바뀌는 것도 그렇고, 전작에서 지적된 것들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아니, 바뀔 수는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일각에서 이런 부분이 아쉽다는 식의 지적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무려 1,761만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를 연출한 감독인데 자신의 방식을 쉽게 바꿀 수는 없으리라고 본 겁니다. 하지만 그 우려는 그야말로 기후에 불과했습니다. 한산 용의 출연은 전작인 명량에 비해서는 훨씬 세련된 작품입니다. 여전히 아쉬운 지점들은 있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로 비판을 수용하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더 진화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성스러울 성인, 성자가 붙는 인물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굳이 말하자면 신라시대의 김유신 정도가 성신으로 불릴 수 있을겁니다.


거기에 성웅이라는 표현은 충무공 이순신 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표현일 겁니다. 임진왜란 최초로 승전을 올린 사람이 이순신장군이며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 또한 이순신 장군입니다. 그리고 노량해전에서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를 치른 사람도 이순신입니다. 물론 임진왜란은 무수히 많은 병사들과 장수들의 영웅적인 행적과 희생, 그리고 무엇보다 의병이 들불처럼 일어나 나라를 지키는 왕의 전쟁이 아닌 민초들의 전쟁이라 봐야 할 정도지만 전쟁의 판도와 전투의 중요도로 보자면 임진왜란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에서 비롯되어서 이순신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알면 알수록 대단한 역사의 안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순신은 마침 조선이라는 나라가 휘청거릴 때 가장 필요한 순간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줄거리

 

명량대첩이 시작되기 전, 정유년 2월에 이순신 장군은 파직당합니다. 
원균이라는 인간이 자기라면 가토를 잡을 수 있다는 식의 장계를 올렸고, 이에 선조는 이순신 장군이 싸우라는 자신의 명령을 늦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하고 압송하면서 그의 후임으로 원균을 올리는, 아마 역사상 최고의 바보 같은 짓거리를 저지르고 맙니다. 역사상 길이남을 헛발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옥고를 치르고 백의종군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습니다. 이로 인해 앓아눕기를 여러 번 할 정도라 하였으니, 이순신 장군은 부글부글 끓는 속만큼이나 몸도 상했을 것입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원균에 의해서 파직당한 것만으로도 창자가 끊어질 만큼의 고통일 텐데 그 원균이라는 작자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 채, 자기가 무슨 이순신이라도 되는 줄 알고 날뛰다가, 칠천량 해전에서 역사적인 대패를 기록합니다. 얼마나 심각한 대패였냐면, 그동안 이순신 장군이 소중하게 키워놓은 정예 수군들이 한순간에 소멸해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 선조는 운이 없었느니,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냐느니, 헛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이순신 장군을 풀어주고, 덜컥 삼도수군통제사에 다시 앉힙니다. 남은 병사들이나 전선은커녕 수군 자체가 소멸했는데, 그 사라진 수군의 우두머리에 앉히고 알아서 하라고 맡긴 겁니다. 이순신 장군의 상황이 극도로 어렵다는 건 잘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명량해전에는 일본의 배도 더 커지고, 일본 수군의 병력도 많았습니다. 여기에서 이순신 장군은 그야말로 사즉생의 각오로 일전을 벌여 기적 같은 승리를 이끄니, 이게 명량해전이고 한산도 대첩은 완벽한 승리에 가깝습니다. 

 

 

 

 

 

한산 대첩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발발 후, 도도 다카토라가 이끄는 왜군과 격돌해 적선 27척을 함몰시킨 엄청난 전공을 세우는데, 이게 임진왜란의 조선군 첫 승전입니다. 이후 이순신 장군은 연전연승을 거듭합니다. 적진포와 합포에서도 싸워 이기고, 2차 출정에서는 영화에서도 나온 사천해전에서 승리하고, 당포해전에서는 적선 21척을 아예 점멸시키고, 지휘관마저 죽였습니다. 이후 당항포와 율포만에서도 승리하면서 일본군의 예봉을 꺾었습니다. 그리고 3차 출정 당시 이순신 장군의 상황은 미래에 있을 명량대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전라우수사 이역기와 더불어 경상우수사 원균의 함대가 참가해, 판옥선이 총 56척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명랑에서 불과 12척의 배로 일본군 300여 척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기량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많은 전선을 지닌 셈입니다. 거기에 거듭된 승전으로 군사의 사기는 치솟았고, 이순신 장군이 직접 훈련시킨 수군의 위력도 명량의 수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에 한산도 대첩에, 세계 해전사에 어울리는 완벽한 승리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한산 대첩은 어느 한 무장의 용기와 전략, 그리고 정신의 승리를 상징하는 전투입니다. 임금의 신뢰는커녕 질투와 조정대신들의 모략에 절벽에 몰린 이순신 장군이 조국을 위하여 그리고 백성들을 위하여 확고한 의지와 기발한 전술을 앞세워  최악의 역경 속에서도 빛나는 승리를 거둔 전쟁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투였습니다.  

 

영화 한산 다시보기

 

한산: 용의 출현 다시보기

1592년 4월,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단 15일 만에 왜군에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 조선을 단숨에 점령한 왜군은 명나라로 향하는 야망을 꿈꾸며 대규모 병역을 부산포로 집

tvwiki.top

 

반응형